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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r

게이감독이 연출한 양성애자 프레디 머큐리의 삶, <보헤미안 랩소디>


게이감독이 연출한 양성애자 프레디 머큐리의 삶, 보헤미안 랩소디

Freddie Mercury 프레디 머큐리 1946

본명 파로크 불사라(Gujarati: ફારોખ બલસારા, Pharōkh Balsār)


게이감독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한 밴드 <퀸>의 보컬이자 양성애자인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그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개봉하여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상업 영화이기 때문에 그가 퀴어로서 살며 겪어야 했던 차별과 고뇌보다, "I won't be a rock star. I will be a legend.(나는 락 스타가 아니라, 전설이 될 것이다.)" 그의 '천재성'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이렇게 뛰어난 퀴어 천재가 있었다'라는 사실을 수면위로 끄집어 올라와준 것 만으로도 굉장히 유의미한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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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앨범인 <Queen>을 시작으로 <A Night at the Opera>가 대박을 치면서 인기를 얻었으나 그는 당시 평론가들에게 엄청 무시를 당했다. 무엇보다 프레디 머큐리는 유럽인이 아니었다. 유럽에서 차별받기 쉬운 아시아 인종이었으며, 그는 성소수자였다. 그로인해 색안경을 끼고 프레디 머큐리의 사생활을 캐내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던 언론인들을 프레디 머큐리는 "그 새끼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상관 안해요.:라며 달가워 하지 않았다. 지금은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뛰어난 나라중 한 국가이지만, 한때 영국은 법으로 동성애를 처벌했던 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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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머큐리는 에이즈로 사망하게 된다. 그는 동성연인 짐 허튼과 일본 여행을 가기위해 비밀리에 검사를 받았으나 그 정보가 유출되며 프레디 머큐리를 못죽여 안달이었던 언론사들은 앞다투어 에이즈 검사를 받은 사실을 기사에 실었으며, 이후 에이즈에 걸렸다는 의혹으로 또 다시 큰 괴롭힘을 받게 된다. 결국 해당 사실을 지속적으로 부정하다, 1991년 11월 23일 공식적으로 에이즈임을 인정하고 24시간이 되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퀸의 멤버들은 그의 에이즈 감염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으며, 프레디 머큐리가 죽을 때 까지 음악을 하고 싶다는 강력한 주장에 숨을 거두는 날까지 열정적으로 프레디 머큐리를 지원해 주었다고 한다.



에이즈라는 질병의 잠복기가 워낙 개인에 따라 다르고 일정치 않기에, 언제 어디서 감염이 되어 면역 결핍 증상이 나타나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80년대 서구에서 크게 창궐하였던 터이니 그때쯤이지 않을까 싶다. 그때에는 적절한 치료법을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90년대 파리에서도 적절한 치료를 제공받지 못하였고, 잠도 못 자며 4시간에 한번씩 약을 먹고, 온몸으로 약의 부작용에 의한 고통에 시달리다 죽어간 감염인들이 많다. 프레디 머큐리 또한 그러한 희생자중에 한명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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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로 인해 병들어 삶이 소진되고 있을 때, 그리고 그가 죽음을 맞이할 때, 곁에는 그와 가장 오랜 기간(1983~1991) 연인으로 지내온 짐 허튼이 함께 있었다. 짐 허튼 역시 1990년에 HIV 양성 판정을 받았지만 투병생활로 피폐해진 프레디 머큐리에게는 그 사실을 숨기고 간병하였다. 그들은 동성연인이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였으나 서로 결혼 반지를 나누고 부부로서 살아갔다. 


이들은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아꼈으며 서로에게 헌신적이었다. 어찌 이를 향해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그대들은 이토록 애틋하고 헌신적인 관계를 맺어본 바가 있는가? 동성애를 혐오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전하고 싶다. 이성애든 동성애든 올바르고 아름다운 '성애'가 중요한 것이지 '애'를 지우고 '이성'과 '동성'에 방점을 찍고 타인을 혐오, 핍박하는 행동을 멈추어 달라고. 제발..


덤, 투병 생활중 프레디 머큐리를 면회할 수 있었던 사람은 아주 가까운 지인 몇 뿐이었다고 한다. 그중 '팝의 제왕' 엘튼 존은 프레디 머큐리의 친구로서 면회를 종종 갔으며 추모 공연에도 올라 프레디 머큐리를 위한 노래를 하였다고 한다. 엘튼 존은 퀸의 활동당시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혐오 가십과 기사들이 쏙아질 때, 이렇게 얘기하곤 했었다고 한다. "그가 만약 영국에서 태어난 유럽인이었다면 프레디 머큐리는 더 큰 성공을 했을꺼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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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2, 프레디 머큐리의 환생이라 불리는 MIKA 또한 성소수자이자 천재적인 밴드 싱어이다. 많은 영국 팬들은 미카의 목소리, 그리고 그의 애티튜드를 보며 제 2의 프레디 머큐리라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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